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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이 책은 내가 내 마음속의 질투로 괴로워 하고 있을때,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소설책이다.

 

토마시는 진지한 만남을 두려워하는 남자로,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이혼을 하고 끊임없이 여러 여자들과 가벼운 만남을 가진다. 토마시에게 여자란 열어보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자아와 구별되는 백만분의일의 개별성/유일성/상이성'의 베일이며 쟁취해야하는 대상이다.

그런 토마시에게 진정한 사랑의 확신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여섯개의 우연을 거쳐 만나게 된 테레자이다.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필연성(의사라는 직업)과 숙명의 여인(플라톤이 말한 인간의 반쪽의 이성, 운명의 사랑) 조차도 버리게 만들 만큼 강력한 사랑의 확신이다. 테레자는 우연과 은유에서 태어났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강렬한 존재이다.

 

그러나 순결한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토마시에게는 자유이자 게임과도 같은, 다른 여인들과의 육체적 만남) 때문에 평생을 질투에 시달린다. 테레자의 질투는 꿈으로 형상화되어 테레자를 끊임 없이 괴롭히고, 악몽에 시달리는 테레자를 보며 토마시 역시 동정심(사랑하는 테레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 함께 괴로워한다.

 

사비나는 어떠한 속박과 진지한 만남도 싫어하는 자유로운 여성으로 한 때 토마시의 정부였다. 그녀는 만남이 진지해지거나 자신에게 속박을 하는 어떠한 상황(순정의 사랑을 강요하는 부모,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본 부인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떠나온 남자 등..) 이 오면 '배신'을 하고 떠난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고 자유를 갈망하지만, 더 이상 배신할 것 조차 남아있지 않았을 때 좌절을 느끼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미국 땅에서도 자신이 죽은 뒤 갇힐(묻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유해를 공중에 뿌려달라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모범적인 삶을 살던 가장 프란츠는 자유로운 사비나에 매료되어 아내에게 이별을 선언하지만 아내는 오히려 홀가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란츠는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과 규율이 본인의 오해였음을 깨닫고 짐을 싸서 사비나에게로 가지만, 속박을 싫어하는 사비나는 이미 떠난 뒤다. 이 후에도 프란츠는 자유로운 사비나를 그리워 하며 사비나의 몽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사비나의 몽상은 그에게 또다른 규율이었다. 

 

또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 상황과 이념의 강요, 그리고 미학적 이상: 키치 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의 맹목적인 미학적 이상주의의 태도(키치)는 인간 몸속의 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같다는 것이다. 사비나는 그런 키치를 피해서 도망을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은..너무나 감동이었다. 화자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이야기 하다가, 그 이야기를 테레자의 입장에서도 이야기 하고, 어느 즈음엔 토마시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인공들 간의 오해와 진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데, 느닷없이 소설속에서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라고 말을 해서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이 소설을 '나는 무거움인가 가벼움인가, 나는 테레자인가 사비나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갈수록 모든 주인공들이 내가 갖고 있는 면을 하나씩 극대화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쯤, 화자가 갑자기 등장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모든 면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인물은 질투쟁이 테레자였다.

 

테레자는 오래 키우던 개 케레닌이 죽을때, 개와 자기의 사랑이, 토마시와 자기의 사랑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바라는게 없기 때문에,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존재해주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테레자는 토마시가 늙고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질투와 의심이 토마시를 이 곳으로 데려왔다고 생각한다.

 

테레자도 어쩌면 키치적인 이상적 사랑을 꿈꾸었던 것 같다. 나라면,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지말고 토마시가 바람피우면 너도 토마시처럼 바람 펴.  ㅠㅠ" 라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 이 소설책은 내 질투심에 힐링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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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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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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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이 욕망은 수 많은 여자에게 적욕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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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머지않아 질투심을 갖게 된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다. 토마시에게 그녀의 질투심은 노벨상이 아니라, 죽기 전 겨우 한두 해 정도만 벗어날 수 있었던 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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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중요했다. 여섯 우연의 소산인 그녀, 외과 과장의 좌골 신경통에서 태어난 꽃 한 송이, 모든 "es muss sein!"의 피안에 있던 그녀, 유일하게 그가 진정으로 애착을 갖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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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에서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선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중략) 자, 이제 그만 하자. 토마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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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플라톤의 [향연]의 유명한 신화를 떠올렸다. 옛날에 인간은 양성을 동시에 지녔고, 신이 이를 반쪽으로 분리해서 그때부터 서로 반쪽을 찾으려고 헤맸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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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자신이 언제라도 꿈속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여섯 우연에서 태어난 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기 사랑의 "es muss sein!"을 배신할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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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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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캄보디아 여행이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하게 보였다. 도대체 왜 이곳까지 왔을까? 이제 와서야 그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여행을 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삶, 유일한 실제 삶은 행진도 사비나도 아니며 안경 낀 여학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였다! 현실이란 꿈을 뛰어넘는 것, 꿈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란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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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그를 비난했다. ...사실 그녀는 그가 귀국해서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요정이 농부를 소용돌이 속에 끓어들여 빠드려 죽이듯 그녀는 그를 불러들여 더욱 낮은 곳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그가 위경련을 앓는 틈을 타 시골에 가서 정착하자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녀는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셈이다. ..하느님 맘소사,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말 여기까지 와야만 했을까!